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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호치민 화장실의 '치명적인 시선들'

by 하카 존탁 2026. 7. 15.

호차민의 푸드 코트, 베트남 식단뿐 아니라 아시아 음식은 거의 다 있는 듯.


호치민의 한 활기찬 푸드코트. 사방에서 풍기는 이국적인 쌀국수 육수 향과 달콤한 코코넛 밀크 향, 그리고 수많은 여행자의 웅성거림이 한데 뒤섞인 열기 속에서 기분 좋은 포만감을 채우고 있을 때였다. 생리적인 신호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긴 곳은 푸드코트 한구석의 남자 화장실. 가벼운 마음으로 지퍼를 내리려던 순간, 내 시선은 소변기 너머 벽면에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어라...?"


소변기 바로 위, 타일 벽면을 따라 길게 늘어선 파란색 띠 속에서  네 명의 젊은 여성들이 일제히 나를—정확히는 내가 지금 막 해방하려는 '그곳'을—아주 정밀하게 조준하여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진 속 그녀들의 표정과 손동작은 가히 예술적이었다. 첫 번째 칸의 그녀는 잔뜩 신이 난 표정으로 검지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키며 무언가를 열렬히 관찰하고 있다. 그 표정은 마치
"우와~ 대박! 까무러칠 뻔했네!"


하는 감탄사라도 내지르는 듯하다. 하지만 그 옆 칸으로 눈길을 돌린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검지와 엄지를 살짝 벌려 보이며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검은 티셔츠의 그녀. 저 손가락 각도는 전 세계 모든 남성들의 심장에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는 바로 그 제스처가 아닌가. 그녀의 눈빛은 아주 정중하고 부드럽게 속삭이는 듯했다.
"에게... 겨우 요만큼이야?"

세 번째 칸의 스트라이프 셔츠를 입은 그녀는 턱을 괴고 심각한 고뇌에 빠져 있다. 마치 국경을 넘나드는 거대한 엔지니어링 프로젝트의 결함을 발견한 것처럼, 아주 근심 어린 표정으로 분석 중이다. 마지막 칸의 그녀는 아예 벽 너머로 고개만 쏙 내민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기한 구경거리를 찾은 아이처럼 웃고 있다.

이 정교하게 설계된 시선의 레이더망 한가운데서 소변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묘한 압박감이 전신을 감쌌다.  38년간 자동차 기술의 정밀한 시스템을 다루며 산전수전 다 겪은 나였건만,  그리고 국경을 넘나들며 거침없이 세상을 유람하는 호탕한 이무기라고 자부해 왔건만, 왜 이 사소한 사진 앞에서 쓸데없이 조금 찔리고 긴장하게 되는 걸까? 아마도 그것은 내 신체적 진실(?)에 대한 켕김보다는, 
전산망의 완벽한 디버깅을 마주했을 때 엔지니어가 느끼는 일종의 '경외감' 같은 것이었으리라.  (그렇다고 믿고 싶다!)

화장실을 나오며 거울을 보니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화장실이라는 가장 은밀하고도 단조로운 공간을, 단 몇 장의 위트 있는 사진으로 이토록 강렬한 '체험형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베트남 사람들의 기발한 공간 디자인 센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푸드코트의 시끌벅적한 열기 속으로 걸어 나오며 시원한 사이공 맥주 한 잔을 들이켰다. 호치민의 밤바람은 여전히 따뜻했고, 남자 화장실 벽면에서 나를 내려다보던 그녀들의 눈빛은 오늘 밤 꿈자리까지 묘한 주파수로 따라올 것만 같다. 혹시라도 호치민의 푸드코트 화장실에 들르게 될 신사분들이 있다면, 부디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진격하시길 바란다. 물론, 나처럼 아주 미세하게 찔리는 느낌이 드는 것까지는 책임지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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