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의 분주함이 지나가고 한가로운 햇살이 비추는 시간, 대구 신천의 나즈막히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본다.오늘 아침은 제법 분주했다. 기술사 등록과 관련된 몇 가지 행정 절차를 처리했고, 갑작스레 먹통이 된 자동차 배터리를 교체하기 위해 출장 기사님을 불렀다. 현장에 오신 기사님은 나보다 열 살은 더 드신 듯한 어르신이었다. 무거운 배터리를 숙련된 손길로 교체하시는 그분의 묵묵한 뒷모습을 보며 감사함과 함께 묘한 만감이 교차했다.
바쁜 주식시장의 피크 타임이 지나고, 배터리 교체까지 마친 뒤 비로소 찾아온 고요함 속에서 나는 창밖의 신천을 바라보며 지나온 세월을 복기해보게 된다.돌아보면 나의 부모님 역시 깡촌에서 태어나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과 자식들 학비 대는 데 온 삶을 바치셨다. 평생을 허겁지겁 살아오신 그분들의 삶을 떠올리다 문득 '나 역시 그 시절의 부모님과 그리 크게 다를 바가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평생을 기술자로, 직장인으로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구조적 굴레를 벗어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문득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가 던진 한 줄의 서늘한 공식이 떠오른다. r > g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이나 노동소득의 인상 속도(g)를 언제나 앞선다는 이 명료하고도 암울한 진실. 자본을 가진 이들은 대대로 부를 물려주며 세상에 떠도는 돈의 흐름을 통제하고, 그 자본으로 다시 노동을 고용해 자산을 증식한다. 반면 노동에 의존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평생 땀 흘려 일해도 그 판을 뒤집기 어렵고, 결국 그 한계를 자녀들에게까지 물려주게 된다.
유럽이든 미국이든, 혹은 우리가 사는 이 땅이든 마찬가지다. 가족의 역사 속 어느 한 시점에 '자본'을 확보할 수 있었던 기회가 없었던 이들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고리를 끊어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한때 희망의 상징이었던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제 신화 속 이야기처럼 아득하기만 하다.물론 세상에는 예외적인 인물들도 존재한다. 역경을 딛고 리더의 자리에 오른 인물들의 스토리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지만, 현실적으로 100명 중 50명이 그렇게 될 수는 없다. 단 몇 명의 특별한 성공 사례가 98명 대다수의 묵묵한 노동이 지닌 불합리한 구조를 가릴 수는 없는 법이다.
한없이 평온해 보이는 창밖 세상의 속내는, 이토록 불공평하고 정교하게 짜여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도 각자의 자리에서 무거운 배터리를 들어 올리고, 시스템을 움직이며, 가족을 위해 묵묵히 이마의 땀을 닦아내는 이들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다. 자본의 속도가 아무리 빠르다 한들, 한 인간이 한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기술과 정성, 그리고 가족을 향한 숭고한 책임감까지 폄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오늘날 내가 자본의 생리를 파악하려 애쓰고, 글을 쓰며 새로운 디지털 자산을 차곡차곡 구축해 나가는 것 역시 어쩌면 이 불공평한 r > g 의 세상 속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던지는 가장 정직하고 지혜로운 질문일지도 모른다.
신천변을 걷다보면 1970년대의 신천의 모습이 사진으로 전시되어있다. 이 물결은 사진 속의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잔잔하게 흘러간다. 어려운 세상이지만 어제와 오늘을 살아낸, 그리고 고단한 내일을 살아갈 나 자신과 세상의 모든 '묵묵한 노동자들'에게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담담한 위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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