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비즈니스의 최전선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살아남았다고 자부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엔지니어로서 기술 교육이나 영업, 회계 같은 이성적이고 딱딱한 영역은 적어도 제게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인간의 성장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거대한 벽을 만났을 때 이루어지는 법인가 봅니다. 어느 날, 회사로부터 관리자 교육을 받으라는 명령을 받고 3박 4일간 외딴 수도원(Kloster)으로 꼼짝없이 끌려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문이 닫히는 순간, 그곳은 교육장이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정신적 감옥이었습니다. 독일의 옛 수도사들이 쓰던 방에는 TV는커녕 흔한 커피잔 하나조차 없었고, 오직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죠. 진짜 고문은 그 텅 빈 공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거창한 테마 아래, 교육의 대부분은 끝없는 압박 토론으로 채워졌습니다. 논리의 빈틈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지독하리만치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를 정제해서 뱉어내야 하는 자리였습니다.
나이 들어 독일에서 MBA까지 마치며 나름대로 언어의 장벽을 넘어섰다고 생각했건만, 네이티브들이 칼날처럼 쏘아붙이는 빠른 속도와 온갖 은유가 뒤섞인 철학적 논쟁을 100% 포착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그 치열한 논리의 전장 속에서, 저는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평생 쌓아온 커리어가 무색하게도 '사람 바보 되는 것은 정말 한순간이구나'라는 것을 말입니다. 말문이 막히고 뇌가 정지하는 듯한 그 순간의 막막함은 온몸을 땀으로 적셨습니다.
꿀맛 같은 휴식 시간이 찾아오면, 저는 탈출구를 찾듯 수도원 마당으로 도망쳐 나와 무작정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치열한 독일 엔지니어들의 틈바구니에서 홀로 겪어내야 했던 그 지독한 설움과 외로움을 아내의 따뜻한 목소리에 기대어 겨우겨우 달래곤 했습니다. 3박 4일 동안 수도사들의 방에 감금된 채 철학적 토론으로 고문을 당하고 나니, 마지막 날 문을 열고 걸어 나올 때는 정말 '살아서 지옥을 탈출했다'는 안도감뿐이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쓰라린 기억마저도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 인생의 독특한 아키텍처였지만, 당시에는 정말 죽을 맛이었습니다. 역시 인생이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더니, 제 독일 생존기 중 가장 혹독했던 그 토요일의 터널이 있었기에 비로소 지금의 평온한 일요일(Sonntag)이 존재하는 것 아닐까요? 오늘도 수도원의 그 적막했던 방을 떠올리며, 자유로운 주말의 공기를 만끽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