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공항의 꽁초와 인도의 소변기: 25년 보쉬맨이 목격한 '문화'의 거대한 힘

문화라는 단어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맞고 틀림의 잣대를 대는 순간 문화는 그 가치를 잃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비로소 이해의 문이 열린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평생을 다르게 살아온 타인의 관습을 거부감 없이 흡수하기란, 때로 고정관념이라는 견고한 벽과 부딪히기 마련이다.
오래전 유럽, 특히 프랑스는 담배에 참으로 관대한 나라였다.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출장길에 자주 들렀던 파리 샤를 드골 공항. 수하물을 찾는 컨베이어 벨트에 한쪽 발을 턱 얹은 채, 맛깔나게 장장 장대처럼 길고 긴 담배 연기를 내뿜던 금발 미녀들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여지없이 다 피운 담배꽁초는 바닥을 향해 냅다 내팽개쳐졌다. 당시 그것은 그들의 일종의 '국룰'이었다.
"왜 쓰레기통에 안 버리고 바닥에 버리나?"
궁금함을 참지 못해 함께 일하던 보쉬 프랑스 동료에게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은 가히 충격적이고도 신선했다.
"내가 낸 세금으로 공항 청소부들이 월급을 받고 일하잖아? 내가 여기 버려야 그 친구도 할 일이 생기고 직업을 유지하지! 걱정 마, 지극히 정상이야!"
자신의 행동에 당당한 이유를 대는 그들의 논리 앞에서, 문화의 차이란 참으로 모호하면서도 다층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인도 뱅갈루루(Bengaluru)의 보쉬 연구소에 갔을 때의 일이다. 내가 느낀 인도 사람들은 대체로 키가 아주 큰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연구소 화장실 소변기 앞에 서는 순간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까치발을 살짝 들어 올려야 겨우 '안정적인 조준'이 가능한 높이였기 때문이다. 정작 소변기를 사용하는 인도 동료들의 키도 나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작은 경우가 많았는데, 왜 그토록 소변기를 높게 달아두었는지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다. (차마 차분한 표정의 인도 친구들에게 "왜 이렇게 높이 달았냐"고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다.)
글로벌 기업인 보쉬(Bosch)는 특성상 국가 간 인력 파견이 매우 잦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부근 실러회에(Schillerhöhe)에 위치한 본사에는 오직 이러한 국제 파견만을 전담하는 매머드급 '국제인사부'가 따로 존재할 정도다.
독일 직원들이 파견지로 가장 선호하는 곳은 단연 미국과 일본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국 역시 선호도가 대단히 높았는데, 재미있는 점은 한국에 한 번 파견을 와본 독일 직원들은 계약이 끝난 후에도 어떻게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기를 쓴다는 사실이었다. 한국 특유의 정과 야간 문화, 정교한 라이프스타일이 그들을 사로잡은 모양이다.
반면 중국은 대단히 특이한 프로필을 가진 파견지였다. 중국으로 파견을 간 독일 직원들은 기혼과 미혼을 막론하고 현지 중국인과 결혼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기혼자라면 기존의 가정을 정리하고 이혼을 감수해야 함을 의미했다. 심지어 그렇게 새로 시작하는 결혼 상대가 같은 보쉬 내부, 그것도 동일한 부서 안에서 일어나는 경우도 흔했다. 그래서 우리끼리는 농담 삼아 "일본 파견 이혼율 XX%, 중국 파견 이혼율 XX%, 한국 파견 이혼율 XX%"라며 국가별 파견 이혼율을 비교해 보는 우스갯소리를 건네곤 했다.
우리는 한 나라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니고, 친구를 사귀고, 가정을 이루며 그것이 삶의 전부이자 가장 강한 끈이라 믿으며 산다. 그러나 언어와 관습, 삶의 태도가 완전히 다른 낯선 문화권에 던져졌을 때, 그렇게 견고해 보이던 가치관과 끈끈했던 가족 관계마저 순식간에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을 목격하곤 한다.
38년 엔지니어의 삶 동안 수많은 기계와 제어 로직을 다루어 왔지만, 결국 세상을 움직이고 사람을 재편하는 가장 무섭고도 강력한 소프트웨어는 바로 '문화(Culture)'라는 이름의 거대한 힘이 아니었을까.